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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제주도도보여행

제주 Episode 1. 떠남...바다를 건너서

제주 Episode 1. 떠남...바다를 건너서

 

 

떠남은 설렘이다.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것을 찾아가는 것은 긴장이고 두려움이지만 그 어떤 감정보다 새로움을 맞이해야 하는 설렘이 가장 앞선다.

그렇게 녹동항에서 바다 너머 제주를 맞이할 설렘을 즐겼다. 

 

 

 

 

5월20일 오전9시 출발 남해고속 7호

 

 

 

 

제주로 가는 배는 아직도 녹동항 근처에 머물고 있는데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단체 관광 가는 어른들은 일행끼리 둥글게 모여앉아 화투를 하거나 술과 음식을 먹는다. 모두 바다 너머 제주에 대한 기대와 여행에 대한 설렘을 나눈다.  

 

 

 

 

 

어릴 적 린드그렌의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를 읽으며 여행을 꿈꿨다. 낯선 곳으로의 떠남, 편안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여행이 아닌 길을 가고 그 길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라스무스와 오스카 같은 여행을 한다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걸어서 사람을 만나고, 낯선 곳을 알아가며 그곳에 동화되어 잠시 머물다 마치 거기를 다 아는 것처럼 떠나올 수 있는 여행.... 이번 제주로의 여행이 그러길 바라며 긴 뱃길에 잠들었는데 아줌마들의 요란한 웃음소리에 깨었다.

 

코스프레를 하는가 엉덩이팬티에 코주부안경을 쓰고 몸을 흔드는 아줌마와 배꼽잡고 웃는 사람들....

일상에서 떠나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읽는다. 마치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같다.

그렇게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항을 나서며 제일 먼저 눈에 띈 야자수가 낯선 땅임을 알여준다.

짊어 진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다. 계획대로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기운내자, 왔으니 앞으로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나 직진이지....

이번 여행 계획은 10일, 1일 10~15km, 지치지 않으면 서귀포까지, 지치면 모슬포까지 제주를 일주하는 1132번 도로를 기본으로 걸으며 해안도로가 있는 경우 해안선을 따라 걷기다. 1132번 도로 한바퀴는 약 180km이고, 해안도로를 포함하면 약 230km 정도이다.

임항로를 걸어 용두암을 향하다 탑동사거리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었다. 벌써 지친다. 습한 날씨로 후덥지근하고 배낭 멘 어깨가 아프다. 길에서 잠시 쉬며 지도로 갈 길을 챙겨 보고 다시 걷는다.

 

용두암 입구다. 용연, 용이 사는 연못이란다. 제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한천과 바다가 만나는 협곡이 절경이다. 제주의 아름답운 곳을 일컫는 '영주십이경'에 용연의 밤이 있다. '용연야범(龍淵夜泛)' 여름밤 이곳에서 배를 띄우고 보는 맑은 물 위에 비친 기암절벽과 달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단다. 음력 7월16일 밤이면 제주목사나 판관이 관속과 선비, 제주 유지들과 기생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나와 배를 띄웠다고 하니 휘영청 밝은 달빛과 배에서 나오는 불빛, 한천에 반사되는 협곡이 장관이었을거다. 한여름밤 뱃놀이에 취해, 달에 취해, 기생의 노래와 춤에 취해, 술에 취해 시 한수 저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구름다리를 건너니 식당이 있다. 지치고 배고파 어딘가서 쉬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기에 무조건 들어섰다. '제주 몸국' 이름은 야하다. 몸국이라니..... 모자반이라는 해초로 끓인 국인데 시원하고 맛있다. '밥이 적으니 더 드시려면 말씀하세요.' 밥 한그릇 더, 서비스다. 맛과 서비스 만족이다.  

 

 

 

 

 

밥 한 그릇 몸국에 말아 먹고나니 기운 난다. 몸국집 근처에 용두암이 있다.

용 한마리가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달아나자 화가 난 한라산 신령이 활을 쏘아 용을 바닷가에 떨어뜨려 몸은 바닷물에 잠기게 하고 머리는 하늘로 향한 채 굳게 했다는 용두암. 약50~60만년 전의 용암류로 구성된 층으로 용암이 위로 뿜어 올라가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 10m 정도의 바위로 파도와 바람에 씻겨 빚어진 용암의 모습이 용의 머리를 닮아서 용두암이라고 한다.

용연과 용두암은 바로 근처이니 용연서 놀던 용이 하늘로 오르는 길이 용두암이었을 거라고 혼자 상상해 본다.

 

 

 

 

 

용두암을 떠나 해안도로를 걷는다. 바닷물이 맑다. 속을 훤히 내보이고 있다. 배낭 멘 어깨가 무거워 걸음이 자꾸 늦어진다. 시내서는 내리쬐던 햇빛이 바닷가로 오니 사라지고 바람이 심해진다. 어깨를 파고드는 것 같은 배낭을 내려놓고 싶다 할 즈음 다끄네물을 만났다.

 

다끄네 마을이 형성되면서 사용했던 물로 세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맨 윗칸은 식수, 그 아래 칸은 야채 씻는데, 맨 아래 칸은 빨래하고 목욕하는 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남성전용 목욕하던 곳과 소에게 물 먹이는 곳도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물은 얼음처럼 차가워 여름철 이 물로 만든 냉국의 맛이 최고였단다.

 

 

 

 

 

제주바다엔 다끄네물처럼 용천수를 사용하던 흔적이 바다를 따라 있다. 어영마을에는 섯물이 있다. 어영마을 소공원에서 오래 쉬며 바다를 바라 보았다. 안개가 짙어지고 있다. 비처럼 내린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내려앉는 안개에 몸이 무거워진다. 이호테우해변까지 가기로 목적지를 정하고 어개를 펼만큼 쉬고 나서 출발이다. 성희가 많이 힘들어 한다. 그래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니 가야만 한다. 사수마을을 지나고 도두봉 아래에선 진한 커피 한잔이 간절했다. 보온병에 남은 커피를 탈탈 털어 마시려 걸음을 멈춘다. 배낭만 아니람 도두봉에 오르자 했을텐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도두동엔 밭마다 밀이 익어가고 있다. 나그네는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을 보며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 갔다던데, 우린 제주 삼백리 바닷가 마을마다 안개비 맞으며 밀밭 길을 게으른 걸음으로 가고 있다. 힘들고 지쳐 주변을 둘러 볼 여유가 없다. 지도에서 이호테우해변은 손가락 한마디만큼 가깝고 이정표는 저만큼쯤이라고 알려주는데, 발걸음이 일부러 먼 곳을 에둘러 가는 것 처럼 멀기만 하다. 그렇게 길을 가며 내용이 예쁜 표지판을 만났다. 표지판만큼 마음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다.

 

 

 

 

 

길 끝에 이호테우해변이 있다고 한다. 표지판에서 양갈래 길이 모두 이호테우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길을 가로질러 가다 혹시 저기가 해변인가 하곤 숲이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숲 너머에 해변이 있는 것 같은데 숲을 헤치고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돌아 나왔다. 여기서 사진 찍고 말 안함 동남아 어디쯤이라고 생각할거라고 얘기하며 사진으로 남겼는데 생각 뿐, 주변이 사진에 다 들어오지 않아 그냥 제주일 뿐이다. 

 

 

 

 

 

이호테우해변, 멀게만 느껴진 그곳에 드디어 안착했다. 텐트를 치기 어려울만큼 바람이 심하다. 방향에 따라 바람의 세기가 다르다. 휴대폰 밧데리가 다 되었다. 안개비가 내리던 해안도로부터 솔라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괜히 불안하다. 도구의 노예가 된 현대인임에 틀림없다.

 

김치찌개와 김을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주하고 어둡지 않은 해안가 밤을 즐긴다. 내일 걸어야 할 길을 지도에서 미리 만나고 잠들기를 청하는데 잠이 쉬 오지 않는다. 오가는 차의 불빛, 바람소리에 뒤척이며 지난 하루를 생각하는데 폭죽소리가 요란하다.

 

제주시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라 저녁이면 연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게 맞는가 보다. 킬킬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폭죽소리가 아련해질무렵 까르륵까르륵 웃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술에 취해 집에 안간다는 처자와 집에 가야 한다는 총각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 잠 좀 잡시다, 소리치고 싶은 맘을 꾹 눌러 참는다. 둘이는 꽤 오래 실랑이를 하곤 택시를 부르기에 텐트를 열고 나갔다. 밤이 환하다. 하얗다.

 

도착해서는 지쳐서 둘러보지 못한 바다를 신새벽에서야 둘러본다. 해수욕철을 대비해 가득 쌓아놓은 모래더미가 공사장 같다. 그 외에 해수욕장 주변은 잘 정돈되어 있다. 이호테우해변의 상징인 말모양 등대가 멀리 보인다. 어슴프레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차마 소리내지 못하고 '제주도의 푸른 밤'을 속으로 흥얼거린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티비에 월급봉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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