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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제주도도보여행

Prologue. 제주를 향하여

Prologue. 제주를 향하여

 

 

실컷들 이야기하라 입이 있을 때

죽은 뒤에 네 유해에서

입술이 뛰겠니

 

실컷들 걸어라 다리가 있을 때

죽은 뒤에 네 발에서

티눈이 생기겠니

 

실컷들 사랑하라 가슴이 있을 때

죽은 뒤에도

네 사랑 간직할

사랑이 있겠니

 

- 이생진 <실컷들 사랑하라> 전문 -

 

실컷들 걸어라 다리가 있을 때......

 

첫돌을 전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걷게 된다.

누구나 걸을 수 있기에 걷는 것에 대하여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고민하지 않는다.

걷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 일상적인 것이며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다.

걸을 수 없을 때,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뛰며 걷던 다리가 더이상 서지지 않을 때, 내 의지로 나를 컨트롤하지 못할 때 비로소 평범하던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말할 수 있음에, 수저를 들고 밥 먹을 수 있음에, 서서 걸을 수 있음에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임을 잃고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작년 12월18일이 지나며 우리는 성희가 다시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재활을 하면서도 과연 걸을 수 있을 지, 그전과 같이 활동할 수 있을 지를 끊임없이 의심하였다.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위로하면서도 그것을 확신할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겨울을 보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따스한 병원서 보내라고 그랬는가 보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 재활을 하며 신경은 풀먹인 연줄마냥 팽팽하게 날이 서 있었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말 한마디로 상처주며 팽팽한 연줄이 언제쯤 끊어질까 조마조마한 겨울을 보냈다.

 

봄이 되었고, 성희가 다시 걷게 되었다. 병원에서의 재활이 더이상 의미 없다는 담당 주치의와 물리치료사의 권유로 퇴원을 생각하며 집에서의 재활방법을 고민하였다. 퇴원 후 한달 정도는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한의원에서 침 맞고, 의료원에서 주 1회 물리치료를 하자, 그 후 여행을 통한 재활도보를 하자 하였다. 홍성을 출발하여 서해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일주일을 걷고 토요일은 일을 해야 하기에 금요일에 홍성으로 돌아오고 다시 일요일에 출발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퇴원을 하였다. 병원에서의 생각과 다르게 퇴원 후 꽤 오랜 시간을 다툼으로 보냈다. 현실에서 오는 갈등이다.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고, 별것도 아닌 거로 상처를 주었다. 그런 갈등 속에 여행을 통한 재활도보가 가능할까, 수없이 의심했다.

도보여행을 가자 얘기만 하고 더이상 아무 것도 의논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하고 있을때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일하지 않고 쉬게 되었다.

 1주 단위의 도보여행을 생각했던 우리에게 2주의 시간이 주어졌다. 제주도로 갈까, 제주도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성희가 제주도부터 가자고 했다. 그렇게 제주도로 여행 장소가 변경되었다.

 

준비해야 할 물품이 의외로 많았다. 성희 혼자 물품을 준비하고 주문하였고, 계속되는 갈등과 다툼 속에서 주문한 물품이 하나씩 도착했다.

떠나기 3일 전, 우리 제주도 갈 수 있을까, 성희가 물었다. 가야지 가기로 했으니 가야지, 짜증스럽게 답했다. 이 여행에 대한 의미가 성희에겐 무척 큰 것인데 내 태도가 너무 무심해 보여 서운타 말도 못하고 혼자 눈물 흘렸을런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내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혼자 재해석해서 받아들이는 성희를 보며 속상하고 짜증난 상황이었기에 같이 마주앉아 이야기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긴 가기로 했는데 정말 가는지에 대해선 우리 둘다 확신하지 못한 채 날을 보냈고, 떠나기 하루 전 짐을 꾸렸다. 생각보다 무거운 배낭, 과연 저걸 짊어지고 다닐 수 있을까, 꾸려진 짐을 바라보며 걱정이 컸다.

 

5월20일 새벽4시, 알람소리에 깼다. 출발이다.

어제까지의 갈등과 다툼이 집을 나서며 모두 사라졌다. 길 위에 다시 둘만이 서있는 것이다.

대천휴게소에서 순두부찌개로 아침을 먹고 고흥 녹동항을 향해 질주다. 어렴풋이 밝아오는 아침, 지리산은 안개에 갇혀있다. 짙은 안개속을 가득한 긴장으로 달린다. 그래도 나는 안개가 좋다. 안개가 가득한 날이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헤세의 시와 함께 그런 안개속을 달린다. 제주를 향하여......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정말 이상하다.

덩쿨과 돌은 모두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나의 생활이 아직도 활기에 찰 때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안개에 휩싸이니

그 누구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것들로부터

인간을 홀로 격리시키는

어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 수가 없다.

 

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정말 이상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혼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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